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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묵상

화내지 않는 것 화를 내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지켜야 할 중대한 의무다. 화내는 것은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니과 불화해서도 안 되며, 아울러 이웃과도 다투어서는 안 된다. 한 순간의 죄로 인해 우리는 길고도 처절한 아픔을 당하게 된다. 필립 헨리 참 현대인들에게 어려운 격언이다. 현대는 분노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 시대처럼 자연과 가깝지도 삶의 느림의 미학도 찾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현대인들이 분노를 조절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자칫, 화를 내지 않는 것에 대한 필립 헨리의 교훈은 사람들에게 화를 억압하는 것으로 오해될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헨리의 충고는 화를 마음으로부터 일으키지 말 것에 권면이다. 이미 마음 속에 일어난 화를 억압하는 것은 다른 방식의 분노의 표.. 더보기
형통... 말씀과 동행하면, 고난 중에라도 형통한 자가 된다. 요셉의 일생에 가장 시련의 순간이라 할 수 있는 형들의 배신과 주인으로부터 받은 누명의 순간에도 성경은 그의 생애에 가장 형통한 순간으로 기록한다. 그가 애굽의 총리로 세상을 호령할 때 형통하다 하지 않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말씀과 그 언약에 신실했던 순간을 형통이라 기록한다.... 형통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라 하더라도 해를 두려워 않는 까닭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2-3) 21 여호와.. 더보기
섭리... 섭리란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는 아무 것도 발생하지 못하도록 만물을 조정하시는 것(Inst. 1.16.3)이다. 따라서 신자는 역경에 처해도,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명령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특별히 사람과 관련하여서는, 사람의 걸음까지 인도하시며(잠 20:24), 말의 응답가지도 지도하신다(잠 16:1,9). 또한 살해자의 손에 사람을 내어주시기도 하고(출 21:3) 제비뽑기도 결정하신다(잠 16:33). 가난과 부귀도 결정하시며(잠 29:13), 높임을 받고 멸시를 받는 것도 은밀한 계획으로 주장하신다(시 75:6-7).(Inst. 1.16.3) 작년 이 맘 때, 내 입술에 대답도 그분이 주관하셨다고 고백한다. 돌아보면, 그렇게 성급하게 대답할 일이 아니었.. 더보기
잡생각 모음 잡생각 모음 노승수 목사 인간에게 필요한 근원적 감정 두 가지는 친밀감과 유능감이다. 대체로 친밀감을 얻고자 하면, 유능함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유능함을 드러내고자하면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친밀함은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지만 배움과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없고, 유능함의 추구는 배움과 발전을 가져다 주지만 더불어 원치 않은 고독이란 선물도 함께 받는다. 열등감은 적개심의 원천이다. 인간의 감정은 인간을 행복하게도 하지만 인간을 지옥의 나락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친밀함은 대체로 엄마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근원적 감정이고 유능감은 대체로 아빠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근원적 감정이다. 친밀함에 실패할 때, 열등감, 수치심, 미움과 적개심,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의 원천이 발생한다. 유능함에 실패할 때, 낮은.. 더보기
나의 선택 나의 선택노승수 목사무언가 선택해야 할 위치에 서 있는가? 헤쳐 나가야 할 인생의 과제와 맞서고 있는가? 혹은 용서해야 할 사람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가? 아픔과 상처를 달래느라 장고 중에 있는가?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마음 속에 원망과 미움이 있음을 알고도 그것을 무시하고 더 깊이 쑤셔 넣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며 비난하고 원망하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자신의 삶이 오염되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전염된다. 다른 길은 원망을 밖으로 꺼내놓고 용서함으로 그것을 털어버리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다.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나의 불평은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할 뿐 아니라 내가 져야할 삶의 무게와 짐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그렇게 전가한다고 전가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제는 원망하.. 더보기
不恥下問 子曰, 不恥下問 노승수 목사 공자가 이르기를, 아래 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목사라는 직임이 누군가에게 물어 배우기 힘든 자리이다. 그러나 가르침이란 항상 배움에서 나오는 법, 어디에서나 배움을 부끄러워한다면, 참된 가르침을 베풀 수 없는 법이다. 목사는 성도에게 가르치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동시에 배우기도 하는 자이다. 상담에서 Working alliance라는 개념이 있다. 청탁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관계라면, 이 얼라언스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말한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은 항상 환자로부터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정신적 질환을 가진 사람이더라도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도움을 받는 일이 환자의 치료에 극적인 촉매 역할을 한다. 사람은 .. 더보기
2011.02.13 14:17 긴장한 만큼 이완이 되지 못하면 쉴 수가 없어집니다. 또 이완된 만큼 긴장하지 못하면 삶은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긴장과 이완은 하나의 리듬과 같습니다. 이 리듬은 삶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 넣습니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 한 방향으로 쏠림 현상이 생길 때, 인생은 위기를 맞습니다. 계속된 긴장은 피로감을 불러 옵니다. 그렇다고 피로가 그리 나쁜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쉼의 필요를 알려주는 일종의 바이오 피드백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피로감은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더보기
상처는 깊이 사랑한 흔적이다. 상처는 깊이 사랑한 흔적이다. 사랑에 서툴러서 혹은 순진해서 마음을 보여주고는 마음을 열고는 그렇게 사랑했기에 치러야 하는 댓가 같은 것이다. 사랑의 상처는 자기 연민 따위로 치료되지 않는다. 상처에 놀란 예민하여진 짐승처럼 헌데를 핥는다고 상처는 낫지 않는다. 심리치료나 나르시스적인 자기애로도 그 상처는 낫지 않는다. ... 상처는 우리가 성숙을 위해 부름받았다는 표지이며,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 같은 것이다. 치료는 죽음과 부활의 십자가에만 있다. 한 알의 밀에 있어서 썩음은 결실의 원천인 것처럼 신앙과 사랑의 여정에 상처는 부르심의 원형이요 성숙을 향한 길 안내자와 같다. 우리는 자신의 동굴에 숨어 그 헌데를 핥을 것이 아니라 썩음과 자기 소멸과 같은 사랑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거기에만 치료가 있.. 더보기
진짜 사랑 진짜 사랑은 너덜너덜해진 데서 시작된다. 쓰레기더미에서 핀 장미처럼, 꽃씨는 제가 내린 자리를 탓하지 않듯이 참 사랑은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비루함을 한할 뿐이며 주의 영광을 사모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바람만 불어도 고개를 돌릴 양이라면 집어쳐라. 주님 말씀마따나 도둑도 제 자식에겐 선한 것으로 줄줄 안다. 그딴 육정으로 영적인 삶을 살아 낼 수는 없다. 그래서 참 신자의 심장은 주님의 손길로 자꾸 망가진다. 거의 되살릴 수 없을 때까지 망가지기를 반복하며 마침내 주님만을 의지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 진짜 사랑은 그렇게 너덜너덜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난한 심령이다. 더보기
닭대가리만큼이라도..... 닭대가리만큼이라도..... 노승수 목사 흔히 머리 나쁜 경우 이르는 속어로 닭대가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순전히 닭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닭이 머리가 나빠서 30초 전에 한 일을 기억치 못할진 몰라도 생애 처음으로 목격한 엄마는 평생을 기억합니다. 이걸 흔히이라고 합니다. 어떤 학자가 이것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했습니다. 갓 태어난 병아리에겐 흔히 엄마닭이 목격되기 마련이지만 엄마닭 대신에 축구공(?, 어떤 공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정확치는 않습니다) 보여주었더니 평생 그 축구공을 따라갔다는 실험입니다. 닭이 머리가 나쁠질 몰라도 그의 첫정에 대한 순정은 바꾸질 않습니다. 평생 하나 밖에 기억하지 못할진 몰라도 그 어미를 바꾸진 않습니다. 사람도 그렇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누군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