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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목회묵상

모방의 위험성 우리의 신학을 모형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원형신학이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모방(mimesis)하기 때문이다. 원형신학의 탁월함은 곧잘 우리로 하여금 착각에 빠지게 한다. 내 형편이 그와 같다는 착각 말이다. 이 때 경계가 무너진다. 내 중3시절에 내 옆자리엔 반장인 소설가 김탁환이, 옆자리엔 부반장이, 앞자리엔 선도부장이, 나를 둘러싸고 모두 학급인원이었다. 조례시간을 마치면서 선생님이 임원들 잠깐 나오라는 말에 옆친구들이 다 일어나서 나가길래 나도 어떨결에 따라 나갔다. 친구들이 웃으면서 "승수 니는 와 나가노" 했다. 순간 기지를 발휘해 "화장실 간다"고 둘러댔지만 근거리에 임원들과 어울리다보니 어느새 임원이라는 자리가 지닌 탁월함(arete)를 모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보기
버나드의 하나님의 사랑 칼뱅이 자주 인용하고 루터가 최애 하였던 버나드는 "하나님의 사랑(On the Love of God)" 이란 작품에서 사랑이 4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첫 단계는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자신을 사랑한다. 이것을 이기적 사랑이라 한다. 둘째는 자신의 축복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한다.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자신의 축복을 위한다는 점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단계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는 전환기며 대부분의 신자가 머물러 있는 단계이기도 하다. 셋째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 영적으로 높은 단계의 사랑이며 하나님과 교제할 때 하나님을 맛보게 되고, 그로 인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임을 알고.. 더보기
후밀리타스(humilitas) 겸손을 뜻하는 후밀리타스(humilitas)는 흙을 뜻하는 라틴어 후무스(humus)를 어원으로 한다. 인간을 뜻하는 휴먼(human)도 후무스에서 왔다. 이는 겸손이 인간의 본질이 흙에 기원했다는 사실을 아는데 있다는 말이다. 흙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므로 영광을 지향한다. 그 영광이란 창조 목적의 실현 곧 탁월함(arete)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에는 경계가 있는데 자신과 타인에 대해 그 경계를 넘는 행동(ate)은 오만(hybris)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모방(mimesis) 해야 하지만 그 경계를 넘음으로 모방이 아닌 하나님의 보수하심 (nemesis)을 부른다. 히브리스를 제거하는 최고의 처방은 후밀리타스 곧 우리의 흙이라는 본질을 기억하는 것이다. 더보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_고전15:15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_고전15:15 신약성경의 부활을 설명하는 구절은 단 한 절도 빠짐없이 모두 그리스도의 부활의 주체를 성부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스스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성부께서 그를 살리신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위치가 참 사람으로서 우리의 위치에서 우리를 대신하시는 것을 함축한다. 그리스도께서도 2위격이신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활에서만큼은 모든 것이 성부께로 돌려진다. 그리스도께서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심은 그가 할례라는 약속이 의미하는 바 곧 율법의 모든 요구에 순종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으며 이 아브라함과 맺은 영원한 언약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폐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 더보기
상처와 성장 핵심감정은 마음에 상처난 사람들만 공부하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영적 성장을 도모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해야 할 공부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본시 스스로 영적 성장을 도모하는 법이 없습니다. 혹 있다하더라도 사력을 다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처럼 죄와 싸우지만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않는 것이죠. 사람이 사력을 다하게 되는 시점은 자신의 위급함이 드러날 때 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야 변화의 발화점이 생깁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상처나고 아픈 상황에서 영적 성장이 이뤄집니다. 핵심감정은 상처난 사람들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영적 성장을 위한 공부이지만 영적으로 성장하려는 사람은 상처라는 위기에 몰려서 자라게 됩니다. 얼마전 독일의 총리 메르켈이 동양의 위기를 입에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위기.. 더보기
에스겔 47:1-12 에스겔 47장의 성전에서 나오는 물은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물이다. 성전에서 나오는 물은 계시록 21-22장에서 성전과 거기서 흐르는 강을 묘사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 이상은 사실 창세기의 에덴동산과 거기서 흐르는 강에 대한 변주다. 에덴동산이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거기서 발견되는 보석 때문이고 이 보석 motif는 성전의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게다가 언약관계를 나타내는 '언약 공식(covenant formula)'을 보여주는 출애굽기 19:5-6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에서 소유로 번역된 세굴라(סְגוּלָּה, segullah)는 보석이라는 뜻이 있고 고대근동의 외교문서에서 종주와 봉신이 맺던 계약관계에서 쓰던 용어다. 그래서 제사장의 제복에 흉패는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새긴 보.. 더보기
히브리서 2장 묵상 (히 2: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히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2절에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라는 것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계시를 가리키는데 신약은 일관되게 이런 전통을 따르고 있다. 예컨대, 스데반의 설교(사도 7:53)나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도(갈 3:19), 구약의 계시가 천사의 중보를 통해 주어졌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히 1:1-3이 계시의 통일성 곧 하나님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계시의 주체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통일.. 더보기
레위기 26장 묵상 1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조각한 것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2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역사에서 거짓 종교의 패턴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 거 같다. 첫째는 지젝이 지적하는 법과 죄의 변증법으로 규범은 위반의 욕망을 일으키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바울이 말한 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롬 6:1)라는 기만이 사실이 되는 기독교를 지적한 것이다. 지젝은 이런 기독교를 ‘비뚤어진(perverse) 기독교', 또는 '가장한 쾌락주의'라고 비판했는데 지젝은 “기독교가 도착적인 방식으로 작동할 때, 우리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종교.. 더보기
전도서 7장 묵상 전도자의 지혜는 원칙이 아니라 삶의 자리를 딛고 서 있는데 있다. 기독교적 사랑인 아가페는 헬라적인 사랑인 에로스가 근본적으로 상승으로서의 충동이며 초월을 지향하는 것과 다르다.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헬라인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바로 몸의 부활이었다. 후에 영지주의가 창궐한 것도 이런 상승의 힘, 곧 영은 선한 것이고 육체는 악한 것이라는 헬라 철학에 기인하고 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의 육화를 믿을 수가 없었고 가현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플라톤이 이데아를 본질로 현상계를 그 그림자로 놓은 것처럼 에로스는 이데아계로의 상승과 합일에 그 목적이 있었다. 낙원을 상실한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종교적 욕구였다. 그러나 몸에 대한 거부는 종교를 이상화시켰다. 이런 현상은 유대인.. 더보기
시편 18편 15.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 고대인의 사고를 드러내준다. 바다 밑에 세상의 터가 있다고 보았다. 하늘, 땅, 바다와 음부, 특히 바다는 테초의 혼돈과 공허의 은유로 자주 등장한다. 성경은 자주 흑암 중에 계신 하나님을 묘사하는데 이는 혼돈 이전에도 전능하신 이심을 드러낸다. 이는 중세 로마네스크와 바로크 양식에도 반영이 되어 있다. 우리가 성경의 영감을 유기 영감이라고 하는 것은 이들의 이런 세계관을 사용하셔서 성경을 기록하셨다는 의미다. 받아쓰기가 아니라 성경 저자들의 삶과 세계관을 반영한 기록이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이런 고대인의 세계 이해 자체가 성경이 전하고자하는 진리가 아니라 그들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되심을 해석해내는 것이 신.. 더보기